일리카페(illycafe) 안드레아 일리 회장 인터뷰기사
에스프레소 1잔 = 원두 50알+90℃·9기압+30초
일리카페(illycafe) 안드레아 일리 회장
김성윤 기자 gourmet@chosun.com
입력시간 : 2008.02.28 09:07
에스프레소(espresso) 커피 마니아들의 의문이자 불만은 대개 이렇다. "이탈리아에선 낡아빠진 시골 카페에서도 제대로 뽑은 에스프레소를 마실 수 있다는데, 한국에선 왜 서울 한복판 호화찬란한 커피숍에서도 찾기 어려울까?" '크레마(crema)'라 불리는 도톰한 황금색 거품층으로 덮힌, 풍부한 맛과 향으로 혀와 코를 압도하며, 쓴맛과 함께 단맛도 느껴져 설탕을 굳이 첨가할 필요가 없으며, 삼켜버린 뒤에도 여운이 오래도록 입에 남는, 시럽처럼 진하고 검은 서너 모금 분량의 커피를 기대하며 에스프레소를 주문한다.
그러나 에스프레소라고 '주장'하며 내주는 커피는 빈약하고 희멀건 거품의 흔적만 겨우 보이는, 너무 많은 양의 쓰기만 한 액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21일 이탈리아 커피 브랜드 '일리카페(illycafe) 회장 안드레아 일리(Andrea Illy·44·사진)씨에게 에스프레소에 대해 물었다.
일리씨는 이날 서울 신사동에 문 연 이탈리아 커피 바 '에스프레사멘테 일리(espressamente illy)' 런칭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일리 회장에게 에스프레소에 대해 물었다. 그는 과학적이면서도 논리적으로 '완벽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뽑는 방법을 설명했다. 일리카페 본사가 있는 이탈리아 트리에스테(Trieste)대학에서 화학을 공부한 공학도이자 교재로도 쓰이는 커피 전문서적을 여럿 저술한 커피 전문가다웠다.
―에스프레소란 무엇입니까.
"에스프레소란 당질, 유기산, 단백질, 카페인 등이 녹아있는 추출액 위에 미세한 기름 방울이 유화상태로 거품층을 이루고 있는 음료입니다. 양은 적으면서 맛과 향, 바디(입안에서 느껴지는 존재감)는 강렬해야 합니다."
―완벽한 에스프레소를 수치로 정의할 수 있나요.
"커피원두 50개를 분쇄해 얻어지는 7g의 커피가루에 섭씨 90도 이상의 물을 9기압의 압력을 가해 30초 동안 추출한 30㎤ 분량의 커피입니다. 에스프레소는 과학적인 음료입니다. 에스프레소 추출에는 60가지 변수가 있습니다. 이 모든 변수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세팅은 단 하나뿐입니다. 하나만 잘못돼도 완벽하게 뽑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에스프레소 전문가인 바리스타가 필요합니다."
―혀로 맛보기 전, 눈으로 보기만 해도 제대로 뽑았는지 알 수 있나요.
"우선 눈으로 알 수 있습니다. 붉은색과 갈색의 중간쯤 되는 두툼한 크레마(거품층)로 에스프레소 표면이 빈틈없이 덮여 나와야 합니다. 크레마의 색이 옅으면 추출이 덜 된 것이고, 짙거나 중간에 구멍이 나 있다면 커피 입자가 너무 곱거나 입자의 양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에스프레소가 큰 공기 방울의 흰 거품을 담고 있다면, 물이 너무 뜨거웠기 때문입니다. 컵 중앙에 하얀 점이 있다면 뽑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의미입니다. 다음은 코입니다. 커피는 물론 아몬드, 초콜릿, 과일 심지어 꽃 냄새까지 맡을 수 있습니다. 커피에는 1000가지가 넘는 풍미가 들었다고 하는데, 에스프레소야말로 커피의 풍미를 가장 완전하게 즐길 수 있는 추출방식입니다. 입에선 쓴맛과 신맛, 단맛이 조화를 이뤄야 합니다. 완벽하게 뽑은 에스프레소에는 굳이 설탕을 첨가할 필요가 없어요."
―설탕이나 우유를 넣는 건 완벽한 에스프레소에 대한 모욕일까요.
"뭐 그렇게까지야…. 우유를 넣고 우유 거품을 얹은 카푸치노는 에스프레소를 맛있게 즐기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우유의 온도와 거품이 완벽해야겠지만요."
―일부 커피 마니아들은 에스프레소보다는 드립커피(뜨거운 물을 커피가루에 부어 커피액을 추출해내는 방식)가 더 이상적이라고 합니다. 강한 압력의 물을 강제로 투과시켜 뽑는 에스프레소의 맛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인위적이란거죠.
"그렇지 않습니다(그는 단호했다). 커피에 1000가지 풍미가 들었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모든 풍미가 다 좋은 건 아닙니다. 우리 입과 코에서 불유쾌하게 느끼는 풍미도 있습니다. 드립커피는 비등점에 가까운 물을 사용합니다. 95도 이상의 물을 사용하면 이 불유쾌한 풍미가 커피에 우러납니다. 또 커피의 풍미는 지방에 녹아있는데, 드립 방식으론 우려낼 수 없어요. 높은 압력을 가하는 에스프레소 방식으로는 가능하지요."
―이탈리아는 물론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에스프레소를 맛볼텐데요. 어느 나라, 어느 도시의 에스프레소가 가장 훌륭한가요.
"나폴리입니다."
―나폴리 물이 좋아서 그렇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베수비오 화산 암반을 거치면서 칼슘 등 미네랄 함량이 이상적으로 조절된다는 설이 있던데요. 낡은 상수도관의 어디에선가 칼슘이 녹아 든다는 설도 있고요.
"물 외에도 여러 조건이 충족됐기 때문입니다. 나폴리에서는 거의 모든 바에서 '레버리지(leverage·지레)' 에스프레소 머신을 사용합니다. '피스톤(piston)' 방식 머신이라 부르기도 하죠. 지레를 잡아당기면 머신 속 압력이 25기압까지 급속하게 올라갔다가 차츰 떨어지면서 커피액을 추출하는 방식입니다. 다루기 힘들지만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보다 훨씬 좋은 맛이 납니다."
―나폴리가 가난한 도시여서 새로 나온 값비싼 반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바꾸지 못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를 낸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돈이 있어도 기계를 바꾸지 않을 겁니다. 손님들이 당장 알아채고 가게를 바꿀걸요. 나폴리 에스프레소가 훌륭한 건 에스프레소를 광적으로 좋아하고 평가할 줄 아는 손님층이 두텁기 때문입니다. 나폴리 카페에서는 에스프레소가 하루 1000잔 이상 나갑니다. 다들 전문가죠. 에스프레소를 담는 잔은 뜨거워야 제맛인데, 나폴리에선 펄펄 끓는 물에 담가둡니다. 이탈리에서도 이렇게 하는 도시는 나폴리 외에 없습니다. 나폴리에서 바리스타는 왕(king)입니다. 자부심이 대단하고, 스타로 대중적 인기를 누릴 정도니까요. 나폴리의 커피문화는 대단합니다."
―일리카페는 뛰어난 커피원두와 관련 도구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업체입니다. 그런데 왜 에스프레사멘테 일리라는 매장을 열고 소매업에 뛰어들었나요.
"에스프레소는 입으로만 즐기는 음료가 아닙니다. 이상적 에스프레소를 이상적 환경에서 즐기면 만족도가 최고로 높아지겠죠. 그걸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싶습니다."
―이제 경쟁자가 된 스타벅스에 대해 평가한다면. 에스프레소 문화를 확산한 공이 클까요, 변질시킨 폐해가 클까요.
"스타벅스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를 했지요. 저는 말을 아끼겠습니다."